1. 흔들리는 세상에서 ‘구원의 확신’이란
3절: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마음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
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내 지혜나 선택처럼 보이지만, 사실 성령님의 세밀한 감동과 간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.
이 찬송을 지은 다니엘 휘틀(Daniel W. Whittle)은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가 한쪽 팔을 잃은 퇴역 소령이었습니다. 전쟁의 참상 속에서 그는 육체적·정신적으로 무너질 수 있었지만, 병상에서 성경을 읽으며 성령의 감동을 체험하고 극적으로 회심했습니다.
그의 삶의 궤적을 보면 이 가사는 단순한 고백이 아닙니다. 포탄이 빗발치고 생명이 스러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, 왜 하필 ‘나에게’ 성령을 보내어 예수를 믿게 하셨는지에 대한 경이로움과 감사가 담겨 있습니다.
2. ‘언제, 어떻게’보다 중요한 것
4절: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
우리는 자꾸 미래의 ‘타임라인’과 ‘방법’에 집착합니다. “이 고난은 언제 끝날까?”, “내 기도는 어떻게 응답될까?”, “주님은 언제 오실까?”
그러나 성경은, 그리고 이 찬송은 “그 시기와 장소는 네가 알 바가 아니다”라고 말합니다. 주님이 밤에 오실지 낮에 오실지, 우리가 주님을 어디서 맞이하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. 미래를 다 알려고 하는 것은 피조물의 욕심일지 모릅니다. 주님은 우리에게 ‘모든 것을 아는 지식’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, ‘알 수 없는 중에도 동행하는 믿음’을 원하십니다.
3. “그럼에도 불구하고” 확실한 한 가지
후렴: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
1절부터 4절까지 끊임없이 “난 알 수 없도다”라며 무지를 고백하던 찬송은, 후렴구에 이르러 “나는 확실히 아네”라는 대반전을 이룹니다.
우리가 붙잡아야 할 신앙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.
- 내가 모르는 것: 내일 일, 고난의 이유, 주님이 오실 때와 장소
- 내가 확실히 아는 것: 주님이 내 모든 형편을 아신다는 것, 그리고 나를 늘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
결국 신앙은 내 삶의 수많은 ‘물음표(?)’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‘느낌표(!)’로 바꾸어 가는 과정입니다.
💡 오늘을 위한 깊은 묵상
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‘알 수 없는 일들’ 천지입니다. 계획대로 되지 않는 재정,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, 건강의 염려 등…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‘알 수 없는 것들’ 때문에 불안해하기보다, “내 모든 형편을 아시는 주님이 나를 보호하신다”는 그 한 가지 확실한 사실에 영혼의 닻을 내려보는 것은 어떨까요?
오늘 하루, 마음에 밀려오는 모든 불안 앞에서 후렴구 가사를 조용히 읊조려 보세요. “주님이 늘 보호해 주실 것을, 나는 확실히 아네.”
아멘, 주님이 늘 보호해 주실 것을, 나는 확실히 아네, 주님께서 보호해주시사, 오늘 하루도 무탈히 지나갈 것을 미리 감사로 올려드립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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